거북이와 인사하고 열대어랑 키스…태평양 한가운데, 쉼표같은 섬

입력 2023-03-30 17:06   수정 2023-03-31 09:01


공룡이 사라지고 인간이 등장하기 전인 4500만 년 전, 서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화산 활동으로 작은 섬들이 생겨났다. 4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 ‘차모로인’들이다. 평화롭던 섬은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자 시끄러워졌다. 중간 기착지로 각광 받으며 유럽 배들이 몰려들었다. 스페인과 독일, 일본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태평양전쟁 때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섬들을 차지하면 미국은 B29 폭격기로 2500㎞ 떨어진 일본 본토를 폭격할 수 있었다. 일본은 이를 막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섬들은 미국이 차지했고, 이듬해 원자폭탄을 실은 폭격기가 이곳을 출발해 일본으로 향했다.

그 섬들은 현재 북마리아나 제도라고 불린다. 사이판은 14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그 역시 가로 10㎞, 세로 20㎞밖에 되지 않는다. 제주도 면적의 16분의 1이다. 차로 한 바퀴 도는 데 약 1시간 걸리는 작은 섬이다. 79년 전인 1944년 ‘사이판 전투’가 벌어졌던 이곳은 이제 다시 평화의 섬이 됐다. 산등성이엔 ‘PEACE’라는 글자판이 세워져 있고, 현지인들은 ‘하파데이(Hafa Adai)’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차모로 말로 ‘안녕하세요’란 뜻의 인사말이다.

쇼핑 및 유흥의 재미가 덜한 대신 사이판엔 ‘천혜의 자연’이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일품이다. 바닥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맑다. 수심이 낮아 수영을 잘 못하는 사람도 안전하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산호초가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며 거센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물빛으로 알 수 있다. 해변에서 1~2㎞를 지나 산호초 방파제를 넘어서면 바다가 짙푸른 색으로 변한다. 깊고 거센 바다다. 사이판 사람들은 지금도 산호초가 자신들의 섬을 지켜준다며 신성시한다. 자연 보호를 위해 개발이 엄격하게 규제된다. 바다거북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마나가하섬은 사이판에서도 아름답기로 첫손에 꼽힌다. 사이판에서 15분 정도 보트를 타고 가면 나오는 무인도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걸어서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산호초 방파제 안에 있기 때문에 수심이 얕다. 주변이 온통 에메랄드빛 바다다. 사이판에 놀러 온 사람들은 다 여기에 있는 듯 가장 많은 인파를 볼 수 있다. 섬 주변에선 패러세일링, 바나나보트, 제트스키 등을 타고, 해변에선 가족 여행객들이 물장구를 친다. 또 하나의 묘미는 스노클링이다. 눈과 코를 덮는 고글을 쓰고 물속에 들어가면 알록달록한 열대어가 눈앞에 보인다.


사이판에서 흥분을 느끼고 싶다면 ‘그로토’가 있다. 사이판 북동쪽에 있는 천연 동굴이다. 사이판 북쪽과 동쪽은 산호초 방파제가 없어 해안가가 깎아지른 절벽이다. 그 해안가로부터 80m 정도 떨어진 육지에 있다. 전문 다이버들도 산소통을 메고 즐겨 찾는 명소다. 수심이 최대 20m에 이를 정도로 깊기 때문에 그냥 들어갈 수 없다. 예약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동굴 저편 물밑에서 비쳐오는 햇살에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이판은 정말 바다 한가운데 있다. 세상 어느 곳과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곳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 동남아시아 휴양지와는 다른 사이판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만세 절벽이 그런 곳이다. 사이판 북쪽 끝에 있다. 사이판 전투가 벌어졌을 때 미군의 투항 권고를 듣지 않고 일본군 병사와 한국인 등 민간인이 뛰어내린 곳이다. 미군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한 일본군 선전물 탓이었다. 위령비가 서 있는 역사적 장소지만, 가파른 절벽과 저 멀리 아무것도 없이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밤이 되면 만세 절벽은 ‘별빛 투어’ 장소로 변한다. 사이판에서도 가장 외진 곳인 까닭에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은 별을 볼 수 있다.

왜 사이판일까. 동남아 휴양지와 비교해 비싸다고 하지만, 사이판만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 안전하고 깨끗하다. 범죄 걱정이 없을 뿐 아니라 미국 땅이어서 각종 안전 규제가 선진국 수준으로 시행된다. 한국인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사이판 최고급 호텔인 켄싱턴호텔, 해안가의 멋진 골프 코스가 자랑인 코럴오션리조트, 아이와 함께 가면 좋은 워터파크 리조트인 PIC 사이판을 이랜드그룹의 해외 호텔·리조트 법인인 마이크로네시아리조트(MRI)가 운영하고 있다. 사이판 월드리조트, 라오라베이 골프&리조트도 한국 회사 소유다.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잠시 조용한 곳에 머물고 싶다면, 자연과 하나 된 진정한 액티비티를 즐기고 싶다면, 사이판은 그런 이들에게 최적의 목적지다.

사이판=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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